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크루이프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2>{{{#!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BpXEMr6LU)]}}}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2pTgHDjf_4I)]}}} || || {{{#000 '''[[1974 FIFA 월드컵 서독|{{{#000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000 스웨덴}}}]]을 상대로 보인 [[크루이프 턴|{{{#000 크루이프 턴}}}]]'''}}} || 크루이프는 피지컬, 테크닉, 브레인 삼박자를 모두 갖춘 완벽한 축구 선수였다. 빠른 순발력과 주력, 독보적인 레벨의 테크닉에 누구보다도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선수로, 온 더 볼과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어떻게 공간을 확보하고 활용해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이 당대 최고였다. 일단 그의 경기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주 넓은 시야'''다. 경기장 전체를 보는 듯한 넓은 시야를 통해 어디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를 잘 알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패스를 할 수 있었다. 토탈 풋볼의 선구자답게 종횡무진 빈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수비 라인까지 내려와 빌드업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는 1974년 월드컵에서 무려 '''36회'''의 기회 창출을 기록했고, 이는 가히 월드컵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기회 창출 기록이다. 그나마 같은 월드컵에서 30회의 기회 창출을 기록한 [[카지미에슈 데이나]], 28회를 기록한 1970년의 [[펠레]], 27회의 기회 창출을 기록한 1986년의 [[디에고 마라도나]], 30회를 기록한 2010년의 [[사비 에르난데스]]만이 이 기록에 근접해 있다. 또한 축구 역사상 최강급의 '''창조성'''을 갖추고 있었다. 자신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으며, 다른 선수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플레이를 자주 하곤 했다. 요즘도 간혹 보이는 [[페널티킥]] 상황에서의 패스도 크루이프가 최초다. 위의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정확하고 공격적인 아웃프런트 킥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또한 '''전술 이해도'''와 '''축구 지능'''마저도 축구사 끝판왕 수준이었는데, 그 [[토탈 풋볼]]을 단번에 이해하고 [[토탈 풋볼]]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천재가 누구였는지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당대 최고의 [[드리블]]러는 물론이요, '''역대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실력을 갖추었다. 영국 축구 전문 매체 '커트오프사이드'가 선정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 베스트 10'에서 [[http://m.sportalkorea.com/news/news_view.php?gisa_uniq=2014112912004364&sp=§ion_code=&fy=&spnk=#imadnews|마라도나, 메시, 가린샤에 이은 4위를 차지하였는데]], 앞선 세 선수들이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로 평가받는 것을 생각하면 축구에 필요한 대부분의 능력을 완벽히 갖추었으면서도 드리블마저 이들에게 필적할 만한 평가를 받은 크루이프의 위엄을 알 수 있다. 요즘 축구 선수라면 기본 소양으로 갖추고 있는 [[크루이프 턴]]을 실전에서 처음 제대로 활용했으며, 온갖 창조적인 드리블 스킬로 무장해 상대 수비수를 쩔쩔매게 만들었다. 거기에 체력과 수비 능력도 뛰어나, 팀 단위의 압박 수비를 본인이 직접 최전선에서 이끌었다.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슬라이딩 태클 실력을 자주 보여주었다. 무려 월드컵 결승전에서 그런 플레이들을 했으니 가히 혁명적인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천성적인 리더십까지 타고난 선수였다. 커리어 중간중간에 [[수비형 미드필더]] 및 [[리베로]]로도 종종 뛰었었는데, 앞서 말했듯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가 리베로로도 뛰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비능력이 뛰어났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수비력을 짐작하게 해주는 자료로 1975-76 시즌 바르셀로나의 수비력 수치가 0.08이던 것을 크루이프가 후방에서 활약한 1976-77 시즌과 1977-78 시즌에는 각각 0.51, 0.61로 크게 개선되었다.[[https://m.fmkorea.com/6001755986|#]]] 신체 능력 역시도 괴물 같은 수준으로, 당시 기준으로 꽤 큰 편인 180cm의 키에도 빠르고 민첩하면서도 피지컬도 준수한 수준이었다. 센터백들을 순간적인 치달로 벗겨낼 수 있었으며, 앞에 언급된 드리블 능력과 합쳐져서 순식간에 두세 명을 제쳐내고 슈팅을 때리는 것이 가능하던 선수였다. 또한 득점력도 상당한 선수였는데, 트랜스퍼마켓 기준으로 클럽 통산 502경기 262골과 135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바르셀로나 시절은 리그에서 어시스트 기록이 집계되어있지 않다.] 국가대표팀에서 48경기 33골 2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앞에도 언급했다시피 전형적인 득점 기계 타입이 아니라 플레이메이커에 가까운 스타일임에도 2경기 1골 이상을 기록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오히려 클럽에서보다 훨씬 뛰어났다. 또한 19-20 시즌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레반도프스키]] 이전까지 역사상 유일한 득점왕 트레블 기록 보유자였기도 하다. 탁월한 운동능력과 역대 한 손에 꼽힐 만한 최고의 테크닉, 그리고 역대 최고 수준의 창조성과 경기 운영 능력으로 필드 전체에서 극도로 효율적인 플레이의 완성형을 만들어낸 선수가 바로 요한 크루이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